난 그림이든 사진이든 특이한 색감, 특이한 구도를 좋아한다.
흔한 모양새를 띄고 있는 것들은 대상의 아름다움은 담을 지언정 창작자의 의도는 읽기 어려운 편이니까.
그래서 뭔가 특이한게 있다하면 후다닥 달려가는게 내 일상이다.
그래서 다녀와봤다.
이건희 특별전.
이중섭 전시는 나보다 아버지가 더 많이 보고 싶어하셨는데, 평일 티켓밖에 구하지 못한 지라 혼자 보러 가게 됐다.
- 이름 :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 위치 : 종로구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층 1전시실
- 기간 : 2022.08.12 - 2023.04.23
- 관람료 : 무료 (예약제)
- 주차 : 시간당 3000원 (대중교통 이용을 추천)
- 오디오북 제공 : MMCA 홈페이지에서 고두심 배우님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이 제공된다.
- 비고
- 황소 그림은 이번 전시에 등장하지 않는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저작권이 만료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인이 필요하다.
관람료는 무료지만 사람들이 몰리게 될 것을 방지해 시간당 140명씩 예약자만 입장을 받고 있다.
예약은 MMCA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로그인을 하고 마감되지 않은 타임에 예약을 걸면 된다.
생각보다 전시가 시작되고 많은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예약 페이지에 가보면 평일에도 예약이 마감된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서울 중심에 위치 + 이중섭 네임밸류 + 이건희 특별전 네임밸류' 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런 고로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에 보고 싶다면 매일 18:00, 향후 2주차의 티켓이 갱신되므로 그 때를 노리도록 하자.
「이중섭」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이중섭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글이다.
내게는 이중섭이라는 화가가 황소 그림을 그렸다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 정도의 정보만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뜨게 된 비운의 화가라는 것도 어렴풋이 나마 알았다. (약간 고흐 느낌으로다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 이중섭에 대한 전시전을 가게 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나는 이중섭의 생애가 굉장한 가난과 고난으로 뒤덮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중섭은 지주 집안 출신이라 생각보다 부유한 삶을 살았고, 일본 오산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온 사람이기도 했다.
황소 그림이 유명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 그림도, 또 물고기와 연꽃 그림도 많이 그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유명하다던 황소 그림은 전시 예정작일 뿐, 이번 이중섭 전시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언제 보여줄건가요 MMCA...)
아내를 사랑하던 사랑꾼이었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화가,
그리고 사람 이중섭.
그의 그림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이중섭 전시 관람 후기 레쓰 기릿
[1] 시작
시작부터 낙낙하게 이중섭 화가님의 분위기가 전시전 곳곳에서 느껴진다.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맹숭한 머리를 가진 아이들과, 투박한 물고기의 모습, 낚시하는 동작까지.
장소와 공간이 따로 구분가지 않는 덩어리 진 형태로 전시전의 벽면이 꾸며져 있다.
그렇게 전시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MMCA 전시를 말하다. 감상의 조각들' 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가 벽면에 쭉 작성되어 있다.
참여하고 싶다면 QR코드가 제공되니 한 번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해당 프로그램은 전시를 관람하러 온 일반인의 시선으로 그림을 분석하고 있어 색다른 감상을 준다.
그리고 벽면에 이중섭 화가가 아내 마사코에게 적어 보내던 편지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사랑꾼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관람 전에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시대별로 이중섭의 그림들이 전시되어있다.
전시장 내부를 전부 찍지는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도 바로 그림을 구경하기에 바빠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했다는게 맞다.
MMCA 과천관에서는 못봤지만 서울관에서는 안내해주는 로봇이 한 대 배치되어있다. 알아서 길을 찾아가며 오디오북에 기록된 내용을 읊어주는 만큼 크게 한 번 관람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그림을 하나하나 세세히 설명하지 않으니 취향에 따라서 이용하면 좋을 듯 하다.
[2] 전시작
연필화
연필화로는 소와 여인, 소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사실 좀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다른 그림들에 비해 연필 흑연이 번진 느낌이라던가, 덧그린 선들이 작품 위로 어지러이 올라가 있었다. 이중섭의 그림은 대체로 초현실적인 느낌이 많이 들고, 객체 위주의, 배경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그러다 보니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연필화는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에 그린 그림들로 그의 특징들이 크게 도드라지진 않았다.
엽서화
엽서화는 대부분 이중섭이 아내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 이남덕)에게 보낸 그림 엽서들이다. 크기가 작고 대체로 펜으로 짧게 끊어내듯 그린 선들이 특징이다. 채색을 한 작품들도 있고, 채색하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다. 약간 불교적인 느낌이 나기도 했다. 연꽃이라던가, 아이들이 발가벗고 뛰노는 모습이 인상깊다. 그리고 이중섭 화가의 그림답게 초현실적이고, 그림에 드러난 사물들의 크기와 비율이 현실과는 많이 다른 모양새를 보였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분위기가 밝고 천진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중섭 화가가 얼마나 순수한 시선을 가졌는지, 평화로운 세상을 사랑하는 지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었지만, 시대적인 상황과는 대비되는 천진한 그림들이 그런 감상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일본에 유학을 하며 생각보다 유복한 삶을 살고 있었던 때였기에 해맑은 시선을 유지했을 수도 있다. 혹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내는 엽서들이기에 제 온화한 마음만 담은 그림들을 전했을 지도 모르겠다.
은지화
엽서화를 지나면 어두운 전시관이 등장한다. 이 곳에서 은지화를 관람할 수 있다.
은지화는 이중섭 화가가 그린 가장 유명한 그림 형태 중 하나다. 해설에 따르면, 은지화는 담배갑에 있는 은박지를 구겨진 형태 그대로 날카로운 철필, 못 등으로 긁어내 안료를 문질러 그린다고 한다. 설명으로 말하기엔 복잡하나 보면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렸을 지 대충 짐작이 간다. 이때부터 이중섭의 상황은 급격하게 안 좋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가족들과 이별하게 되고 (가족들은 일본에 가 있었다), 지주 집안 출신이었던 이중섭은 '자본가'로 몰려 모든 재산이 몰수되는 등 역경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은지화였다. 담배갑에 있는 은지에 그림을 그린 것. 이후에 저명한 화가가 되면 대작으로 완성시키고자 했던 그림들. 아내에게 보관하라며 보냈던 그림들, 그러나 끝내 완성되지 못했던.
대부분의 그림들이 가족, 아이를 담고 있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은지의 구겨짐 때문에 그림의 형태를 알아보는게 조금 어려웠다. 그리고 은지의 재질 때문인지 궁생맞아 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그가 처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게 아닐까.
편지화
편지화는 이중섭 화가가 아내 이남덕, 그리고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보낸 편지들에 그린 그림이다. 이때의 이중섭은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개인전 이후에 이름을 날려 일본으로 건너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편지의 내용이며 그림이며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친다.
다만 이 편지화를 보면서 속이 쓰리고 아픈 것은, 이 이후에 절절히 사랑하던 가족이 채 만나지 못하고 이별해야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지독한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등졌다는게 행복이 가득한 편지화의 내용을 조금 더 비극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군.
이상하리만큼 당신은 나의 모든 점에 들어맞는 훌륭한 미와 진을 간직한 천사요.
당신의 모든 좋은 점이 나의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어 내가 얼마나 생생하게 사는 보람을 강하게 느꼈는지 모르오.
내 귀여운 당신의 볼에 있는 크고 고운 사마귀를 생각하고 있소.
그 사마귀에 오래 키스하고 싶소.
- 부인에게 보낸 편지 中
그 외
그 외에도 투계라던가 다섯 명의 아이들 등 이중섭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그림들을 몇 가지 가져와봤다. 상기했듯 황소 그림은 볼 수 없었다.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중섭 특별전에 구성되지 않은 건 여전히 아쉬운 일이랄까. 다른 전시회를 통해 연필화만으로 만날 수 있었던 이중섭의 소 그림을 강렬한 색채와 투박한 붓터치로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말년에 이중섭이 그린 정릉풍경은 그 색채와 그림이 쓸쓸하기 짝이 없어 따로 찍지는 않았다. 정릉풍경은 말년에 정신상태가 좋지 않은 때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전의 그림들과는 달리 분위기가 몹시 삭막하다. 생각건데, 간염과 영양실조를 앓으며, 수도 없이 병원을 들낙이며,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예견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3] 관람후기
지금의 우리는 황소 등의 그림으로, 또 다양한 매체로 그려진 이중섭의 일생을 알기에 그를 국민화가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당시의 이중섭은 지금처럼 명망높은 화가가 아니었다. 개인 전시회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가져왔고, 그의 마지막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중섭은 무연고자로 홀로 죽었으며, 그의 시신 곁에는 병원비 독촉장만이 쓸쓸히 쌓여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중섭을 「요절한 천재 화가」로 본다. 시대에 저항의식이 담겨있는 그림으로 황소 그림을 뽑고, 민족의 화가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전시회를 보면서 이중섭은 '살아서' 행복하고 싶었던 어느 예술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었고, 그의 소소한 감정들이 담긴 그림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공간은 정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부산하다. 그래서 작품을 다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관람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두 개의 책자가 준비되어 있는데 큰 글자 감상자료를 챙겨서 관람하는 걸 추천한다.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작품을 조금 더 세심하게 관람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나버린 화가 이중섭.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껴보고 싶다면 관람해보는 걸 추천해보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