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의 시작은 미약하다.
4학년 말미에 다른 전공수업은 무릇 다 들었던 관계로, 별 생각없이 캡스톤 디자인을 수강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교수님이 상법쪽에서 난다긴다 하시는 분이시기도 했으니 모쪼록 퀄리티 높은 수업을 들으리라는 기대도 컸다.
남다른 수업 참여도와 상시 존재하는 토론, 퀴즈, 소논문 작성까지 이게 한 과목의 분량이 맞는 건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원없이 내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당시에 작성했던 소논문들이 컴퓨터에 없어 눈 앞이 아찔했으나, 학교 사이트에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른 기말고사 정리본이나 중간고사 정리본은 다 정리해놓고 정작 과제물을 삭제한 머저리가 될 뻔했다. 이 참에 다 저장해서 학기 말 과제 폴더에 저장해둘 생각이다. 날림으로 작성한 글들도 많아 누구 보여주기 참 남부끄럽지만 그걸 상법 교수님께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줬다는 점에서부터 얼굴이 불콰해진다.
교수님은 내 의견이 어떻든, 교수님의 의견에 설사 반대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늘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주셨다. 그러나 형식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엄격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게 내 졸업논문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주석 작성이 어렵다고 많이 투덜거렸는데, 교수님은 선구안이 있으셨다..!(?)
매일같이 회의시간이 주어졌고, 그때마다 매주 작성해야 하는 소논문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진행됐다.
어려운 주제에 걸릴 때면 교수님을 지체없이 콜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고견을 듣기도 했다. 직접 모든 지식을 찾아 취득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면 어려운 부분들이었지만, 모두 좋은 경험이었다. 과제가 없다면 무슨 객기로 금융감독원에 소비자보호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질문했겠나.
회의록 작성은 바로바로 이루어졌고, 회의록을 기반으로 발표도 꾸준히 진행됐었다. 발표는 돌아가면서 진행됐었는데, 보통은 더 많은 자료를 조사해오고, 더 많은 지식을 쌓아온 사람이 발표를 맡아했다. 나는 신문기사를 주로 찾아보는 쪽이었는데 학계와 여론의 입장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인터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논점을 볼 수 있다는 두 가지 장점이 그 이유였다.
물론 구체적인 통계와 구체적인 자료 조사 측면에서 신문기사는 마땅치 않았으나, 교수님은 Nice Try를 외치며 다양한 시선을 가지기 위해선 어떤 자료도 융통성있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무척이나 시야가 넓으신 교수님이셨다.
같이 수업을 듣고 캡스톤 디자인을 수행했던 분들 중에 게임업체에서 업무를 보고 계신 분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의 주제는 자동 핀테크로 고정된다.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살리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점이 크다. 그 선배님 덕분에 코딩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했고 현재 핀테크 사업이 대부분 쉬운 금융, 이를테면 알리페이를 모티브로 삼아 나아간다는 점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이후에도 금융권으로 입사를 알아보면서 핀테크는 확실히 금융권보다는 IT업계에 가깝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금융감독원과 핀테크 업계가 그렇게 삐그덕 거렸나 싶기도 했고. 자유롭고 기술을 향한 지향성이 높은 IT업계는 보안을 우선시하는 금융업계와는 성격이 상이하다. 금융업계는 지향하는 고객층이 넓게 분포되어있는 편이고 IT업계는 주로 젊은 세대, MZ세대에 몰려있다. 핀테크 업체라고 해서 다른건 아니다. 쉬운 금융을 표방하고 독보적으로 쉬운 UI를 제작하며 중장년층, 노년층을 겨냥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나마 핀테크 업체의 활황은 Covid-19로 인해 비대면이 강제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끝은 창대할 수 있다.
법학과를 다니면서 참여형 수업은 교양을 제외하곤 들어본 적이 없다. 애석하게도 학문의 전이가 우선될 수 밖에 없는 법학과의 특성이 그렇다. 4년내내 전공을 열심히 듣고 또 들어도 법이라는 학문에 대해 깊게 숙지하고 매년 새로이 개정되는 법률을 습득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덕분에 남들이 고생고생을 한다는 팀플은 피해갔으나 자율적인 학습보다는 고등학생 때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법학과니 감수하는 것도 맞는 일이나, 일정 부분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캡스톤 수업을 들으면서, 다행히 좋은 팀원들을 만나 팀플 잔혹사를 찍지 않고도 좋은 참여형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열정이 가득한 교수님 덕분에 다양한 주제로 탐구해볼 수 있었고, 생각도 안해봤던 IT업계, 핀테크 업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어쩌면 그냥 공무원 시험만 준비했을 지도 모를 내 인생이 이 수업으로 꽤 많이 변형됐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열정적이고, 참여하는 사람이 (원동력은 학점이었을 지언정) 주도적인 참여형 수업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꽤 즐겁고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수업이었다. 아무래도 팀원을 너무 잘 만난 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시 오징어게임이 꽤 유행하던 시점이었는데, 할로윈에 맞춰서 오징어 게임 분장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총평을 내리자면,
마지막 학기에 가장 열정을 쏟았던 내 인생 최고의 수업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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